디자인

문자와 그림의 시작

hu-il 2022. 9. 20. 23:08
반응형

호모 사피엔스, 즉 의식을 지니고 사고하는 사람으로서의 생물학적 종이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유사 이전 인류의 기원에 대한 탐구가 계속되면서 인간의 조상이 초기의 진화적 혁신을 맞이한 시점은 거듭 앞당겨지고 있다. 현재 우리는 남아프리카 남부에 살았던 어떤 종으로부터 인류가 진화해 나온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초기 원시 인들은 숲이 서서히 사라져 가자 위험을 무릅쓰고 풀이 덮인 평원과 동굴 속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높게 자란 풀로 이루어진 초원에서 그들은 직립을 시작했다. 아마도 무성한 수풀 안에 숨은 약탈자를 살피거나 키를 크게 만들어 적을 도망가게 하거나, 무기로 쓸 나뭇가지를 움켜쥐어야 하는 필요에 적응한 결과일 것이다. 직립으로 인해 손의 사용 능력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음식을 나르거나 물건을 쥘 수도 있게 되었다. 아프리카 케냐의 터카나 호수 근처에서 발견된 300만 년 가까이 된 돌은 날카롭게 다듬은 연장으로서, 당시에 이미 사려 깊이 의도된 테크놀로지, 즉 도구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초기 석기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식물 뿌리를 캐내거나 죽은 동물의 살을 잘라 내는 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그 쓰임새에 대해서는 미루어 짐작할 뿐이지만 이 최초의 도구들이 인간이라는 종이 원시의 상태에서 문명 상태로 가는 거대한 여정을 시작하는 큰 한 걸음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도약을 거듭하면서 인류는 공동체를 조직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서로 의사소통을 위해 소리를 내는 능력, 즉 말은 인간이 원시적 상태에서 출발하여 기나긴 진화의 여정을 거치면서 일찍이 습득한 기술 가운데 하나이다. 문자 쓰기는 말하기의 시각적인 대응 물이다. 물건의 표면이나 바닥에 그려놓거나 써놓은 부호, 상징, 그림, 문자 등은 말로 표현된 단어 또는 말해지지 않은 생각의 그래픽적 대응 물이 되었다. 말은 오류를 범하기 쉬운 인간의 기억력과 시공을 뛰어넘을 수 없는 표현의 순간성 때문에 한계를 지닌다. 현재의 전자 시대에 이르러서도 말 그 자체는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는 반면, 쓰인 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문자의 발명은 인간에게 문명이라는 영광을 가져다주었고 그들이 어렵사리 얻은 지식과 경험, 사상들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문자와 시각 언어의 발달은 간단한 그림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이는 그림을 그리는 일과 문자로 표시하는 일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초기 인류는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초보적인 수단으로 그림을 사용하였다.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초기 인류의 흔적은 20만 년도 더 된 것이다. 구석기시대 초기에서 신석기시대에 걸쳐(기원전 35000~4000) 아프리카와 유럽의 원시인들은 동굴벽에 그림들을 남겼다. 그 가운데 한가 프랑스 남부의 라스코 동굴 벽화이다. 검은색 안료는 목탄에서, 연노란색에서 적갈색에 이르는 여러 가지 따뜻한 색조들은 붉은색 미치 노란색의 철산화물로부터 얻었으며 착색제로 동물의 지방을 섞었다. 이 그림들은 한때 지하 수로였다가 원시인들의 피난처로 쓰였던 동굴의 벽에 그려져 있다. 안료는 손가락으로 문지르거나 동물의 털 또는 갈대로 만든 붓을 써서 벽면에 칠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은 예술의 시초는 아니다. 그보다는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최초의 그림들은 생존을 위해서 그려진 것으로 실용적이고 제의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동물 그림들 옆에 창으로 보이는 표식들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 그림 들은 동물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사냥에서의 성공을 기원하고자 거행되었던 주술적 의식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젊은이들에게 집단적 협동 작업으로서의 사냥의 과정에 대해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보조 자료였다고 추측해 볼 수도 있다.

다수의 동굴 벽화들에서 점과 사각형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모양의 추상적인 기하학 기호들이 동물 그림들과 뒤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기하학적 기호들이 인공적 대상물들을 나타내는 것인지 혹은 원시 문자였는지는 알 수 없으며 또 앞으로도 정확히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기호들은 역사의 기록이 시작되기 이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인류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과 사건들에 대한 연대기를 문자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부터이다.).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들은 그림문자 (사물의 모양을 나타내기 위한 초보적인 그림이나 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북미, 뉴질랜드 군도 등 세계 도처의 선사 시대 인류는 다수의 암각화를 남겼다. 이것들은 바위를 깎거나 긁어 만든 기호나 간단한 도형들이다. 이들 암각화 가운데 다수는 그림문자이며, 일부는 생각이나 개념을 나타내는 표의 문자 또는 상징이다. 많은 선사 시대 그림들이 당시 인류가 높은 수준의 관찰력과 기억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남 프랑스 로르테의 동굴에서 발견된 사슴의 뿔에 새겨진 그림을 보면 사슴과 연어를 그린 솜씨가 놀라울 만큼 정교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내부에 표시가 있는 두 개의 다이아몬드 모양의 형상으로서 이는 당시 인류가 상징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초기의 그림문자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화해 나갔다. 첫째는 회화 예술의 시초를 이루면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세상의 사물과 사건들이 갈수록 더욱 충실하고 정확히 기록되게 하였다. 둘째는 문자로 진화해 나갔다. 그 원래의 회화적 형태가 유지되고 있든 아니든 간에 이미지들이 말소리를 나타내기 위한 상징들로 결국 발전한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