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상형문자 2
로제타 스톤에 담긴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장 프랑수아 샹폴리옹이었다. 샹폴리옹은 상형문자들 가운데 어떤 것들이 자모이고 어떤 것들이 음절을 표현하는 문자이며, 또 어떤 것들이 한정사인지를 알아내었다. 상형문자가 단지 그림문자로서만이 아니라 종종 표음문자로서도 기능한다는 사실을 알아 낸 샹폴리옹은 프톨레미와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을 표시하는 상형문자를 읽어낼 수 있었다. 이 엄청난 발견은 샹폴리옹이 문자들이 새겨진 이집트의 거대한 토템 탑 오벨리스크를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손에 넣은 뒤인 1822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사진을 연구하던 샹폴리옹은 자신이 일찍이 프톨레미와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이라고 알아본 상형문자들을 담은 카투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샹폴리옹은 이 두 낱말에서 함께 나타나는 상형문자에 p,o,l의 음가를 부여했다. 그리고는 나머지 상형문자들의 음가를 밝히기 위해 끈기를 가지고 노력한 끝에 12개의 상형무자를 번역해 냈다. 또한 샹폴리옹은여기서 얻은 새로운 지식으로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담긴 카투쉬도 해독해 낼 수 있었다.
샹폴리옹은 손에 넣을 수 있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카투쉬들을 모두 구해서 80개의 카투쉬를 빠른 시간에 번역했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량의 상형문자 어휘를 익힐 수 있었다. 샹폴리옹이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에 그의 이집트어 사전과 이집트어 문법이 세상에 나왔다. 상형문자 해독에 있어 그가 이룩한 진보 덕분에 19세기의 다른 이집트 연구가들은 상형 문자로 소리없이 보존되어온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의 신비를 풀 수 있었다.
초기의 이집트 필경사들은 시각적 형태로 표현하기 힘든 낱말들을 기록해야 할 때 소리를 나타내는 상징을 고안했던 것으로보인다. 이와 함께 필경사들은 모든 자음 및 말할 때 나오는 조합 자음에 각 하나씩의 그림 기호를 부여했다. 비록 자음들을 연결하는 소리 즉 모음을 나타내는 기호를 만들지는 않았으나, 여러 가지 상형문자들을 조합함으로써 필요한 모든 낱말의 기본 골격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신왕조 시대에 이르러 대단히 효율적인 발전으로 문자 체계는 700여 개가 넘는 상형문자 어휘를 지니게 된다. 그 가운데 100여개 이상은 여전히 엄격한 의미에서의 시각적인 그림문자 내지 낱말 내용을 그대로 담은 그림들이었으나 그 나머지는 표음문자화되었다. 이집트어에는 동음이의어 가 무척 많았던 탓에 그런 동음이의어들 뒤에는 한정사가 따라 나와서 낱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읽는 이에게 확실히 해주었다. 예를 들어 hinew라는 낱말에는 액체의 도량 단위를 가리킬 수도 있었고, 또 이웃이라는 뜻도 있었따. 도량 단위를 나타내는 경우에는 그 뒤에 맥주 항아리를 나타내는 상형문자가 한정사로 붙었으며, 이웃을 가리킬 때는 한 남자와 여자를 나타내는 상형문자가 한정사로 따라왔다.
고대 이집트인은 탁월한 디자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상형문자의 장식적인 효과나 시각적 짜임새에 있어서도 무척 신경을 썼다. 이 기념지적 시각 언어는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었다. 상형문자는 돌 위에 양각이나 음각으로 새겨졌고 여기에 흔히 채색이 더해졌다. 이렇게 돌에 새겨진 상형무자는 사원과 무덤의 안과 밖을 뒤덮었다. 가구, 관, 의복, 도구, 건물, 보석 등 모든 것들에 장식 효과 및 무언가를 적어 넣을 목적으로 상형문자들이 새겨졌다. 어떤 상형문자들은 특별한 주술적,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한 예로, 십자가 위에 고리가 올려진 모양을 하고 있는 안크라는 상형문자는 샌달 끈을 나타내는 기호로서 처음에는 별로 특별하지 않은 낱말이었다. 하지만 발음상의 유사성 때문에 생명과 불멸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의 의미를 얻어 신성함을 나타내는 문장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상형문자의 디자인적 유연성은 문자를 원하는 방향으로 써내려갈 수 있다는 점에 의해 크게 확대되었다. 인간이나 동물의 얼굴도 있었고, 수직으로 써내려갈 수도 있었다. 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수평칸에 횡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수직 줄에 종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의 횡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의 종서 가운데서 적합한 것을 고를 수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아스팔타왕의 석관에 새겨진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디자인 방법들이 한 작품 안에 동시에 쓰이기도 했다.
파피루스와 문자
종이와 비슷한 문서 기록용 재료인 파피루스의 발명은 이집트의 시각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진보였다. 고대에는 나일강변의 얕은 습지나 물 웅덩이에 사이페루스 파피루스 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으며 이집트인들은 이 식물을 여러가지 용도로 활용하였다. 파피루스는 줄기 길이가 4.6m나 되어 수표면 위로 높이 솟아 자랐는데, 그꽃은 사원을 장식하는화환을 만드는데 썼으며 뿌리는 땔감과 도구로, 줄기는 돛이나 멍석, 옷감, 밧줄, 샌달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파피루스의 재료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