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2

기원전 2800년경에 이르러 필경사들은 문자 꼴의 방향을 옆으로 바꾸어 그리고 가로 방향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판의 위쪽부터 아래쪽으로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문자 기록이 훨씬 수월해졌으며 그림문자는 나타내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기존의 엄격한 대입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약 300년이 흐른 뒤에 끝이 쪼족하던 첨필 대신에 삼각뿔 모양으로 생긴 첨필이 쓰이면서 문자 기록 속도가 더 빨라졌다. 이 새로운 첨필은 진흙 속에 넣고 끌어서 선을 만다는 대신 진흙에다 대고 눌러서 문자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제 문자들은 이어진 선이 아니라 일련의 쐐기 모양의 획들로 이루어졌다. 이 같은 혁신은 문자 기록의 본질을 뿌리부터 바꾸어 놓았다. 그림 문자가 설형문자(쐐기 모양을 뜻하는 라틴어)라고 불리는 추상적 기호 문자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수메르인의 문자 쓰기가 그래픽적 형태의 진화를 거치면서 그것의 정보 기록 능력 또한 확대되어 갔다. 상징 그림들이 생물 및 무생물의 대상들을 재현하던 최초의 단계에서 벗어나 이제 기호는 표의문자화 되면서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를 테면 태양의 상징 부호로서의 일이나 빛과 같은 개념들을 나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초의 필경사들이 말과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소리들을 문자로 나타낼 필요가 생겨났다. 이를테면 부사, 전치사, 사람 이름 따위를 그림문자로 바꾸어 나타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림 기호들은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을 나타내는 말소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설형문자는 리버스 문자로 변해갔다. 이 상징 문자들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소리와 같거나 비슷한 낱말과 음절을 나타낸다. 이로써 그림들은 표음문자 또는 말소리를 나타내는 그래픽 기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고도로 발전한 설형문자는 음절, 즉 보다 기본적인 말소리들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소리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설형문자는 습득하기 아주 어려운 문자 체계였다. 이는 앗시리아인들이 설형문자를 560개의 부호로 단순화시켜 놓은 뒤에도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필경사가 되기 위해 선발된 어린이들은 열 살 이전에 에두바라는 문자 학교 또는 문자판 제작소에 다니면서 훈련을 받기 시작했는데, 매일 동틀 때부터 해질 무렵까지 한 달에 6일만 쉬고 공부를 해야 했다. 성직자나 토지 관리인, 회계사, 의사, 정부 관료 등의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오로지 이들 선택된 소수에게만 보장되었으며 중요한 주술적, 제의적 행사도 이들만이 할 수 있었다. 일반 대중들은 문자를 쓸 줄 아는 이들을 경외심을 가지고 대하였으며 성스러운 필경사가 "운명의 서"라는 신비의 책에 누군가의 이름을 새겨넣음으로써 그에게 죽음이 닥치는 것이라고 믿었다.

초기 수메르 장인들은 문자를 부조의 그림 이미지와 섞어 사용하였다. 블라우의 유물 은 동일한 표면에 문자와 그림을 결합해 놓은 아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물일 것이다.

문자에 의해 초래된 지식의 폭발은 엄청난 것이었다. 도서관이 세워지고 종교, 수학, 역사, 법률, 의학, 천문학 등에 관한 수천 장의 문자판들이 그곳에 보관되었다. 시, 신화, 찬가, 서사시, 설화 등으로 피어 오른 문학들 또한 진흙판에 기록되었다. 문자는 전에 없던 깊은 역사의식을 불어넣었고 각 왕조가 통치했던 기간 동안 있었던 사건들이 문자판에 꼼꼼하고 정확하게 연대별로 기록되었다. 수천 장의 상거래 계약서  및 기록들이 만들어져 아직까지 남아있다.

문자로 인하여 사회는 규칙과 법률 아래서 안정될 수 있었다. 길이와 무게에 대한 도량형이 표준화되고 그 내용이 명문화되었다. 기원전 1792년에서 1750년까지 통치했던 함무라비 왕의 명문화된 법전들이 만들어져 범죄 및 그에 관한 처벌을 명시함으로써 사회적 질서와 정의를 확립하였다. 함무라비 법전은 2.44m 높이의 비석에 섬세한 설형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비석에는 282 항목의 법조문이 일정하게 나뉜 총 21개의 세로줄에 써져 있다. 함무라비 왕의 개혁 법률이 담긴 비석들은 바빌론의 마둑의 중앙 사원 및 여러 도시들에 세워졌다. 비문은 정확한 문체로 죄에 따른 가혹한 형벌들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에게서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사형', '가변운 상처를 입은 환자를 청동 해부 칼로 수술한 외과의사는 그 손을 자른다', '집이 무너져 집주인이 죽으면 그 집을 지은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는 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