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상지
태국에서 살았던 초기 인류가 훨씬 더 이전 시기부터 농사를 짓고 도기를 제작했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유물들이 최근에 발굴되기 전까지만 해도 고고학자들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땅, 이른바 '강과 강 사이의 땅'이라고 오랫동안 믿고 있었다. 터키 동쪽의 산악 지대에서 시작해서 지금의 이라크 땅을 거쳐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드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에는, 겨울에는 비가 많고 여름에는 덥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초기 인류에게는 대단히 살기 좋은 곳이었음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한때는 비옥했던 널찍한 평원이 펼쳐져 있는 이곳에서, 초기 인류는 정처 없이 떠도는 유목생활을 그만두고 촌락 문화를 확립하였다. 기원전 8000년경 이들은 야생의 곡물을 구해 땅에 심고 동물들을 사육하기 시작하면서 농업을 시작하였다. 기원전 6000년경에 이르러서는 구리를 두들겨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원전 3000년 경에 이르러 청동기 시대가 열리면서 주석을 합금하여 내구성이 강한 도구와 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뒤이어 바퀴도 발명되었다.
촌락 문화로부터 보다 수준 높은 문명으로의 도약은 기원전 4000년 말경에 수메르인들이 메소포타미아로 들어온 뒤에 일어났다. 기원전 3000년 이전에 비옥한 초승달의 아래쪽 지대에 정착한 이들 수메르인들의 기원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전된 여러 가지 기술들이 이후 인류의 미래에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것들이었다면 , 수메르인들이 사회와 지적인 측면의 진보에 기여한 바는 인류의 미래에 그보다 훨씬 더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수메르인들은 하늘의 신 아누라는 절대신을 중심으로 하는 신들의 체계를 만들어냈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복잡한 체계가 등장한 것이다. 도시가 모습을 나타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질서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인류를 문명의 길로 들어서게 한 수메르의 수많은 발명들 가운데서도 문자의 발명은 인류의 사회 질서와 경제적 진보, 기술과 문화의 발전 등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지적 혁명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는 이 지역을 정복한 수많은 침략자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수메르인들이 세운 문화는 그 침략자들을 차례로 정복해 나갔다. 오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에서 그곳을 지배했던 많은 민족들 가운데는 아카디아인, 앗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칼데아인 등이 있었다. 서쪽에서 온 페르시아인들과 북쪽에서 온 히타이트인들 또한 이 지역을 정복한 후 메소포타미아의 문명을 '비옥한 초승달'의 경계 밖으로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최초의 문자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국가에서는 종교가 삶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이는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거대한 지구라트, 즉 계단이 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복합 사원이 잘 말해 주고 있다. 이 거대한 다층의 벽돌 사원들은 움푹 들어간 여러 개의 평평한 층을 두고 위쪽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면서 꼭대기의 제단에 이르도록 건축되었다. 이 안에서 성직자와 필경사 들은 신들과 왕의 재산을 관리하고 사람들의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요구들을 채워주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여기서 문자가 발전하게 된 것은 아마도 사원의 경제적 이유로 장부를 기록해야 할 절박한 필요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원을 책임지고 있던 우두머리들은 정보를 기록하기 위한 체계를 얻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음에 틀림이 없다.
시간은 인간의 기억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에 때로 중요한 사실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중요한 사실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누구누구가 세곡을 냈나? 얼마만큼 의 식량을 저장해두었으며, 그 저장해 놓은 식량은 다음 추수 때까지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양을 채우기에 충분한가? 이다음에 충분한 곡물 수확을 확보하려면 다음 파종을 위해 얼마만큼의 씨앗을 보관해 두어야 하며 또 어느 정도를 사람의 식량과 가축의 사료로 쓸 수 있는가? 이렇게 비교적 간단한 질문들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사원의 성직자들은 도시 국가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체계화된 정확한 지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는 식량 저장용 자루나 항아리 안에 든 내용물이 무엇인지 분간할 필요에서 시각 언어가 발생했다는 설도 있다. 진흙으로 작은 꼬리표를 만들고 거기다 그림문자를 그려 넣어 자루나 항아리 안에 든 내용물을 표시하고, 내용물의 양은 사람의 열 손가락에서 착안 한 초보적인 수준의 십진법으로 표기해 두었던 것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문자의 기록은 우루크시의 글자판들이다. 이 판들은 정연하게 나누어진 칸 안에 여러 가지 재화를 그림문자로 그려 넣고 그 옆에 관련 숫자와 사람 이름들을 새겨 넣어 만든 일람표임이 분명하다. 진흙이 수메르 지역에 흔했던 까닭에 이것이 자연스럽게 기록의 재료로 쓰이게 되었으며, 그림문자의 섬세하고 굴곡진 선을 그리는 데는 갈대 끝을 뾰족하게 만든 철필이 쓰였다. 필경사들은 진흙판을 왼손으로 잡고 그 표면을 나무 철필로 긁어서 그림문자를 글자판의 오른쪽 위 구석에서부터 꼼꼼히 세로줄로 써넣었다. 글자가 새겨진 진흙판은 뜨거운 햇볕 아래서 말리거나 가마에서 돌처럼 단단하게 구웠다.
이 같은 수메르의 문자 쓰기 체계는 수세기를 거치면서 진화하게 된다. 문자는 수평과 수직으로 분할된 정연한 격자의 공간 안에 배열되었다. 때로는 필경사가 진흙판 위에서 오른손을 움직이다가 자기가 써놓은 글씨를 문질러 망쳐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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